鞄・ハンドバッグ・小物の歴史─ランドセル

軍隊の道具がランドセルのルーツ

「ランセル」が「ランドセル」に

明治時代、東京に創設された学習院では、軍隊で使う「背のう」に学用品を入れて通学させていました。この背のうは、幕末に西洋式の軍隊制度が導入された際に、一緒に入ってきたもの。これがランドセルのルーツといえそうです。

「ランドセル」という言葉は、オランダ語で背のうを「ランセル」と呼ぶところから生まれたといわれ、現在まで受け継がれています。

伊藤博文が特注したランドセル

生まれた当時のランドセルは、リュックサックに近いものだったそうで、現在のようなタイプが誕生したのは明治20年のこと。時の総理大臣である伊藤博文が、大正天皇の学習院入学を祝して、特注したものを献上したのが始まりだそうです。

The history of bags, handbags, and small leather goods ─ Randoseru (Japanese school backpacks)

Army tools are the roots of Randoseru (Japanese school backpacks)

"Lancel" is changed to "Randoseru" (Japanese school backpacks)

In the Meiji era, Gakushuin, a university founded in Tokyo, used the military's "backpack" to carry school supplies to school. This backpack came into Japan when the Western-style military system was introduced during the Bakumatsu period (end of Edo period). This can be said to be the origin of Randoseru (Japanese school backpacks).

The word "Randoseru" is said to have been born from the word "lancel," which means backpack in Dutch.

Randoseru (Japanese school backpacks) specially ordered by Hirobumi Ito

It seems that the Randoseru (Japanese school backpacks) at that time was close to a backpack, and the present type was born in 1887. The Prime Minister of the time, Hirobumi Ito, celebrated the entrance of Emperor Taisho to the Gakushuin, and specially ordered one to offer it to him.

皮包、手提包、小挂件的历史—双肩背学生包

双肩背学生包起源于军队的装备

“Lancel”变成“Randoseru(双肩背学生包)”

明治时代,在东京创立的学习院,让学生把学习用品放入军队使用的“背囊”来上学。这种背囊是幕末引进西式军队制度时一同带进来的。这可以说就是双肩背学生包的起源。

“双肩背学生包”一词源于荷兰语中将背囊称为“Lancel”,并一直流传至今。

伊藤博文特别订制的双肩背学生包

刚问世的双肩背学生包,据说和双肩背包很接近,现在的这种类型是在明治20年出现的。据传其始于当时的总理大臣伊藤博文,为了庆祝大正天皇进入学习院而特意献上的特别订制的书包。

가방 · 핸드백 · 소품의 역사 ─── 란도세루

군대의 도구가 란도세루의 기원

'란세루'가 '란도세루'로

메이지 시대(1868~1912), 도쿄에 설립된 가쿠슈인(学習院, 당시 귀족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군대에서 사용하는 '배낭(背のう)'에 학용품을 넣어 통학하도록 시켰습니다. 이 '배낭'은 에도시대 말기(1853~1868)에 서양식 군대 제도가 도입되면서 함께 들어온 것입니다. 이것이 가방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란도세루(ランドセル)라는 말은 네덜란드어로 배낭을 '란세루(ransel)'라고 부른다는 점에 착안해서 태어난 명칭이라고 알려져 있으며 지금까지 이 말이 계승되고 있습니다.

이토 히로부미가 특별 주문한 란도세루

당시의 란도세루는 배낭에 가까운 것이 었다고합니다. 현재와 같은 형태가 등장한 것이 메이지 20년(1887년)으로 당시 수상이었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다이쇼 천황의 가쿠슈인 입학을 축하드리고자 헌상한 특별 주문 란도세루가 그 시초라고합니다.